국내 메밀의 주산지는 강원도가 아닌 제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메밀은 거친 땅에서도 적응력이 뛰어나고 재배기간이 짧다는 특징이 있다.
가뭄이나 장마 또는 병충해의 영향도 덜 받으니 농부의 손길도 덜 필요하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을 일궈온 제주사람들에게 메밀은 그 옛날 어려운 시절을 버티게 해준
보배와 같은 구황작물이었다.
제주 메밀의 유래에 대해선 ‘자청비’라는 여신에 얽힌 설화가 유명하다.
늦도록 자식이 없어 상심하던 김진국 대감 부부는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덕에 겨우 딸 하나를 얻었다.
불공이 2% 모자랐는지 아들이 아닌 딸이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행동을 보면 딸이 아닌 아들이다.
이 여자아이 자청비는 남자 못지않게 적극적이고 화통한 성격이라 매사에 천방지축 왈가닥으로 자랐다.
열다섯 되던 해에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아들 문도령을 만났는데, 한눈에 마음에 들었나 보다.
곧바로 남장을 하곤 도령을 따라 나섰다.
“여전히 나를 남자로 알고 있는 답답한 문도령아!” 3년간 함께했던 글공부를 마치고 헤어질 때에야
자청비는 자신이 여자임을 밝혔다.
깜짝 놀란 문도령은 그녀와 결혼을 기약하곤 아버지 부름에 응하여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세월이 가도 소식이 없자 자청비는 직접 하늘나라로 문도령을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그를 만났고 어려운 관문을 대범하게 통과하여 드디어 문도령과의 혼인에 성공했다.
집안 살림은 물론 궁중 살림도 잘하고 성격도 활달했기에 옥황상제의 며느리로서 너무 잘한다고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평안과 행복도 잠시, 하늘나라에 큰 반란이 일어났다.
이때 자청비가 여인의 몸으로 직접 출동하여 난을 진압함으로써 옥황상제와 문도령을 위험에서 구해냈다.
크게 기뻐한 옥황상제는 상으로 땅을 주려 했지만 자청비는 오곡의 씨앗을 요구해 받아냈다.
이를 가지고 문도령과 함께 고향 제주 땅으로 내려왔다.
하늘나라에서 가져온 씨앗들을 섬 여기저기에 심고 보니 다섯 종자 중 하나가 빠졌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부랴부랴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간 자청비는 마지막 종자를 되찾고 돌아와선 뒤늦게 밭에 심었다.
오곡의 씨앗 중 마지막으로 심은 이 종자가 바로 메밀이다.
하늘나라에 다녀오는 바람에 한발 늦게 파종은 했지만 수확은 다른 농작물들과 같은 시기에 이뤄질 수 있었다.
메밀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생육 기간이 짧아 이모작도 가능하게 된 건 자청비의 이런 수고와 정성 때문이다.
처음에 메밀을 하늘나라에 빠트리고 온 것이 제주인들 식생활에는 결과적으로 이로움을 준 것이다.
이후 자청비는 섬사람들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농업의 신이자 곡물의 신으로 숭앙받았다.
제주 섬의 창조주인 설문대할망 휘하에 바다에는 어업을 돌보는 외방신 영등할망이 있고,
대지에는 농사를 관장하는 농업의 신 자청비가 있는 것이다. (다움발췌)